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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시아 초승달

by usagi00 2024. 10. 2.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는 이슬람 혁명을 기점으로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 이후 철저한 적대 관계로 변모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양국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와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등 시아 초승달 벨트를 이용한 대리전 확산의 과정 및 전면전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이슬람 혁명 이전 : 공존과 협력의 시대

(1) 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다음날 이스라엘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 아랍 연맹(팔레스타인,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은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되는데, 이를 1차 중동전쟁(1948년 5월 15일 ~ 1949년 3월 10일)이라고 합니다.

중동-내에서-이스라엘의-위치를-보여주는-지도
이스라엘-위치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의 독립에 반대하는 아랍 국가들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당시 팔라비 왕정 체제였고, 중동에서 아랍 민족주의와 거리를 두며 지역의 정치적 갈등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입장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란은 서구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서방 세계에서 신흥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란은 1950년 튀르키예에 이어 이슬람 국가로는 2번째로 이스라엘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며, 수도 테헤란에 이스라엘 대사관을 세우는 우호적 관계를 맺기까지 합니다. 이란의 팔라비 왕조는 이런 행보의 연장으로 1963년 백색혁명을 통해 중동 최대의 친미국가가 되기에 이릅니다. 자국 내 보수적 이슬람 세력들에게 세속화 혁명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의 지원 속에 이란은 목표로 했던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2) 2차 중동전쟁

2차 중동전쟁(1956년 10월 29일 ~ 11월 7일)은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하자,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가 반발하여 일으킨 전쟁으로, 수에즈 운하 전쟁으로도 불립니다. 이란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스라엘과 트랜스 이스라엘 파이프라인(Trans-Israel Pipeline)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적으로 협력하게 됩니다.

수에즈-운하를-통하지-않고-이란의-석유를-유럽으로-운송할-수-있는-트랜스-이스라엘-파이프라인의-사진
트랜스-이스라엘-파이프라인

 

이란 역시 유럽에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에 막대한 수에즈 운하 이용료를 지불해야만 했었는데, 이스라엘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에일라트-아슈켈론)을 이용하면 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리라는 경제적 계산에서 비롯된 협력이었습니다. 물론, 급진적 아랍 민족주의를 위협으로 간주하는 이란의 친서방적 외교관이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당시 비공식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우호적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며, 1950년대에는 두 나라가 중동에서 공통의 적을 가진 협력자로 여겨졌습니다. 이란은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와 협력해 중동에서의 정보활동을 강화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의 경제적, 군사적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프로젝트 플라워(Project Flower)로, 1970년대 첨단 미사일 개발을 위해 이스라엘과의 기술 협력이 이루어진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당시 두 나라는 미국과의 강한 동맹을 바탕으로 군사적 협력 단계까지 이르는 중동에서 가장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2. 이슬람 혁명과 적대 관계의 시작

(1) 이슬람 혁명

1979년 이슬람 혁명은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란은 부패한 팔라비 세속 왕정을 몰아내고 세계 최초의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국가란 종교와 정치가 일치하는 체제로, 최고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 전역을 장악하며 일시에 중동 최대의 반미 국가로 변모하게 됩니다.

1979년-이란-이슬람-혁명
이란-이슬람-혁명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정권"이라 칭하며 강한 반이스라엘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이란의 새로운 지도자인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억압과 침략의 상징"으로 보고, 이스라엘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이후,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무장 단체를 지원하며 장막 속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리전을 시작합니다.

 

(2) 이슬람 혁명 수비대

이슬람 혁명 수비대(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IRGC)는 이슬람 혁명 직후 이란의 첫 번째 최고 종교지도자였던 호메이니의 지시로 창설된 이란의 정예 군사 조직입니다. 당시 정규 군대가 왕정 시대의 세력으로 혁명에 완전히 충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혁명 체제를 수호할 별도의 무장 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군대입니다. 

이슬람혁명수비대의-고드스군의-모습
이슬람혁명수비대-쿠드스군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니며, 이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행사는 단체입니다. 육군, 해군, 공군을 모두 갖추고 있고, 특히 쿠드스군(Quds Force)은 페르시아어로 예루살렘이라는 뜻의 IRGC의 해외 공작 부대로, 시리아 내전이나 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시아파 민병대와 같은 단체에 대한 지원 활동을 통해 이란의 해외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란 내 석유, 건설, 통신, 은행업, 무역 등 다양한 산업 부문을 장악하여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고 있으며, 2024년 이란 국방 예산의 70% 이상이 이슬람 혁명 수비대가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6대 대통령이었던 아흐마디네자드와 현재 최고 지도자인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 역시 이슬람 혁명 수비대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헤즈볼라

헤즈볼라(Hezbollah)는 레바논 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 시아파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이자, 종교 및 정치 조직으로, '알라의 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응하여 이란의 지원을 받아 창설되었습니다. 이들은 작은 이란으로 불리며,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군사력(5만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바논은 1차 대전 당시 기독교의 분파인 마론파의 비율이 80%가 넘는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1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는데, 프랑스는 원래 시리아의 영토였던 지역을 레바논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면서 이슬람 비율을 40% 수준으로 조정합니다. 그 이유는 식민지의 분열을 유도하여 독립을 방해하려는 제국주의적 의도였습니다.

 

2차 대전 후 레바논은 결국 독립하게 되지만, 이슬람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내전이 시작됩니다. 전후 인구구성 비율로 합의했던 국회의석 등의 권력배정 비율에 대한 불만이 그 원인이었으며 이때, 기독교에 친화적이었던 중동의 두 국가,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중재를 목적으로 개입합니다. 1982년 8월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몰아내고, 레바논에 단독으로 기독교 마론파 정권을 수립하게 되는데, 곧바로 제마일 대통령의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며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마론파 정권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암살의 배후로 보고, 이스라엘의 지원으로 난민촌에서 학살을 자행합니다. 사브라 샤틸라 난민촌 학살로 알려진 이 사건이 헤즈볼라 창설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헤즈볼라는 자살폭탄테러로 이스라엘과 미국 등 평화유지군을 레바논에서 철수시키며 중동 사회에서 최초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헤즈볼라는 2006년 7월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를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민간인 지역에 백린탄 공습을 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극심한 지탄을 받게 되고 UN의 중재로 평화유지군이 파견되기 이릅니다. 결과적으로 헤즈볼라가 중동 최대의 군사강국인 이스라엘 정예병을 이긴 모양새가 되어, 헤즈볼라는 일약 중동 무장세력의 스타로 등극하게 되고, 레바논 내 집권여당이 될 정도로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됩니다.

헤즈볼라와-이스라엘의-백린탄
헤즈볼라-백린탄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에서뿐만 아니라 중동 전역에서 이란의 시아파 세력 확장과 반이스라엘 전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히 고드스군은 헤즈볼라의 군사 훈련과 자금 지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에 시리아 내전, 이라크, 예멘 등 여러 분쟁 지역에서 이란의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며 시아파 축을 강화하는 주요 도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3. 핵 문제와 갈등의 심화

2000년대에 들어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이란의 핵 개발 시도로 인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2002년 이란 반체제 인사의 이란 핵개발 사이트 폭로로 국제사회에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당시 이란은 이에 대한 인정 후 핵 개발 유예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의 집권으로 상황은 돌변합니다. 아흐마디네자드는 반서방, 반이스라엘의 원리주의자로서, 이란의 핵 개발 재개를 선언하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는 본격적인 파탄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이란의 핵기술은 이전의 위협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차원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란의-6대-대통령-아흐마디네자드
아흐마디네자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자신에게 가해지는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여러 비밀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사건이 스턱스넷(Stuxnet) 사이버 공격입니다. 2010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미국이 협력해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이란의 핵 시설을 교란한 것으로, 이란의 핵 개발을 3년 이상 지연시키는 효과를 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과학자들을 암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이란의 주요 핵 과학자들이 의문의 사고나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이 사건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특히, 2020년 이란의 최고 핵물리학자 파흐리자데의 죽음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적대감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4.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리전 확산

(1) 시리아 내전

2010년 대 '아랍의 봄' 영향 속에 시리아 국민들은 철권통치와 장기 독재정치를 이어오던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에 무력 진압으로 대응했고, 결국 2013년 시리아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시리아 반군을, 이란은 시리아 아사드 정부군을 지원하며 대리전의 양상을 이어나갔습니다. 

국제전-양상으로-발전한-시리아-내전
시리아-내전의-확전

 

2014년 미국, 영국, 프랑스, UAE,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세력이 내전에 개입하면서, 이란은 고드스군, 헤즈볼라를 시리아에 파견했으며,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전복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의 참전으로 전세는 국제전의 양상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은 2024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사건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추방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무장세력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반이스라엘 시아파 세력 중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이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 집단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지도부를 공격하며, 이란이 하마스를 통해 이스라엘에 가하는 압력을 완전히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하마스에 대한 공격은, 70년대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이전의 국소전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여타 다른 전쟁들과 유사하게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납치, 살해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이스라엘의 대응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2024년 7월 31일 하마스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하는 등 하마스의 지휘체계를 완전히 와해시키고 일방적 공세를 퍼붓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예멘 내전 : 후티 반군

이란은 예멘에서 활동하는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중동 전역에서 이스라엘과의 대리전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후티 반군(알 후티 장군이 반군 창설)은 예멘과 사우디 남부를 근거지로 하는 친이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입니다. 예멘은 현재 수니파의 정부군과 시아파 반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후티 반군이 정부군을 밀어내고 수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아파-후티-반군과-수니파-정부군이-대치하고-있는-예멘의-내전-지도
예멘-내전

 

후티 반군 역시 이란 쿠드스군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세력으로, 2014년 예멘의 실권을 장악한 후, 홍해를 지나 이스라엘로 향하는 민간 선박을 30여 차례나 공격하는 등 반이스라엘의 행보를 보여왔고, 지난달에는 이스라엘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3발을 직접 발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2024년 9월 29일 공중 급유기까지 동원하며 1700km를 날아가 예멘의 후티 거점을 전투기로 폭격하는 무력 쇼를 과시했습니다.

 

(4) 시아 초승달 벨트 : 반이스라엘 전선

최근  중동 관련 뉴스에 '저항의 축'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용어는 본래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사용했던 '악의 축'에 대해 반발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주로 이란이 지원하는 반이스라엘 무장세력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란이-구축하고-있는-반이스라엘-전선인-시아-초승달-벨트의-모습
시아-초승달

 

가지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 아사드 정권, 이라크 민병대, 예멘 후티 반군이 이에 속하는데 이는 곧, 이란이 중심이 되는 이슬람 시아파 세력 연합인, 시아 초승달 벨트를 가리킵니다. 이란은 지난 수십 년간, 반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하고 지원하여 이스라엘과 대리전을 펼쳐왔습니다.

 

 

5.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

(1)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스라엘은 2024년 4월 1일 시리아 내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이란 영사관을 공습했고,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로 360여 기의 드론과 150여 발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발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방공망 시스템으로 99% 요격하여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알려졌고, 당시 전문가들은 확전을 부담스럽게 여긴 이란이 공격 수위를 조절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10월 1일,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180발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또 한 차례 전면적 갈등을 예고했습니다. 이는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에 대한 보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강력한 보복을 예고해 왔으나 그간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2) 네타냐후 정권의 확전 의지

전문가들은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잇따른 '저항의 축' 세력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이란이 언제까지 전면전을 피할 수만은 없던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폭주는 결국 이란과의 확전을 원하는 네타냐후 정권의 의지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총리-베냐민-네타냐후의-모습
이스라엘-네타냐후-총리

 

네타냐후는 누적 재임 16년으로 이스라엘 최장기 총리로, 현재 뇌물 수수와, 배임사기, 개인 부패 스캔들로 전쟁 후, 3건의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의 무리해 보이기까지 한 과격한 행보는 결국 국내 관심을 국외로 돌리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으며, 실제로 전쟁이 확전 될 때마다 정권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3) 전면전 가능성

이란의 이번 공격 역시 4월에 이어 또다시 이스라엘에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후 이란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보복 공격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보복 공격도 종료된다고 선언했습니다. 마치 '약속된 대련' 같은 분위기를 다시 연출하면서 이란이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피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네타냐후 정권은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전쟁을 원하고 있으며, 이는 곧 이란과의 전면전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타냐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이란을 이스라엘 최대의 위협 요인으로 꼽는 등 이란의 핵 기술에 특히나 발작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란 대리 세력이 약화되었을 때, 이란 핵 시설을 타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난 4월의 이란 미사일 공격에 대한 재보복은 공군기지 폭격 정도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나탄즈에 위치한 핵 시설을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스라엘의-이란-핵시설-타격-주장
이스라엘-이란-전면전

 

시간이 많지 않은 네타냐후 정권의 최대 목표는 이란 핵 시설과 핵 프로그램을 무력하게 만드는 폭격일 가능성이 높고, 이란은 이스라엘의 미끼를 물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에 비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란에 대해, '저항의 축' 종주국으로서의 영향력에 대한 비난의 시선도 있지만, 이스라엘에 비해 급할 것이 전혀 없는 이란은 계속 신중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4) 경제적 영향

이란의 보복 공격 후, 미국 증시는 나스닥 1.5% 하락을 비롯해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으며, 안전자산 선호로 달러와 금시세가 상승하고, 비트코인은 큰 폭의 하락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란의 보복 종료 선언이 그들의 확전 의지가 높지 않음의 신호로 읽히면서, 일시적인 반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재보복 여부가 향후 중장기적 영향에 가장 직접적인 요인임은 분명하지만, 이 정도로 순한 맛 공격에 이란의 무리한 재보복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란이 확실한 확전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적당한 수준에서 요동치다가 이전 사태와 비슷하게 정상화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란이 그렇게 쉽게 미끼를 물어버리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며

끝나지 않는 갈등의 악순환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단순한 국가 간의 적대 관계를 넘어, 중동 전체의 정치적, 군사적 권력 투쟁을 반영합니다.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시아 초승달을 중심으로 한 세력권을 구축하며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미사일 반격으로 그 수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Iron Dome)과 다윗의 돌팔매(David's Sling), 애로우(Arrow) 시스템을 통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며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네타냐후의 부패 스캔들과 같은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중동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지속적으로 충돌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러한 갈등이 단기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는 지역 및 국제 정치의 복잡성을 반영하여 앞으로 전면전 상황으로의 확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은 이란은 시간에 쫓기고 있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폭주에 대해, 한층 여유 있는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