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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마스터 커스텀(mod) 5만원 프로젝트

by usagi00 2024. 7. 22.

마린마스터는 다이버 시계 애호가들이라면, 한 번쯤 손목 위에 올려보고 싶어 하는 모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세간의 브랜드 평판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쉽사리 용기를 내기 힘든 게 현실이지요. 본 포스팅에서는 5만 원 예산으로 마린마스터 스타일의 오토매틱 시계를 제작해 보겠습니다.

 

 

1. 제작 동기

마린마스터 커스텀 혹은 mod를 처음 접했던 시기는 십 수년도 더 된 아주 오래된 시절입니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방식은 skx007 모델을 기본으로 다이얼과 밴드만 교체해서 만드는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처럼 교체 부품의 수급이 쉽지 않았던 당시를 생각해 보면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던 시도였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커스텀의 핵심인 다이얼을 구매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베이 정도가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급처였지요.  정품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다이얼판을 수십만 원씩 들여서 교체했던 후기들을 종종 읽고, 나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충동들이 어렴풋이 생각하네요. 

 

나이 먹다 보니 그보다 하이엔드급의 시계들을 거쳐갔지만 이상하게 점점 시계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더군요. 이제는 실용적인 쿼츠 시계들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실리적인 '어른'이 되었는데, 마린마스터(마마)에는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첫사랑 같은 아련함 같은 것이 있음을 최근 다시 느꼈습니다.

 

시계를 좋아하는 지인이 차고 있던 마마를 보고, 다른 이는 '그가세(그 가격에 세이코)'를 연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순간 진정한 멋이 느껴졌습니다. 시계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 감가상각, 리세일가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 재화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겠지요. 정해진 틀 속에서 정답만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반발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시계에 대해 느꼈던 두근거림이 오랜만에 느껴지더군요.

 

아무튼, 서론이 길어졌는데 각설하고, 요는 마린마스터짱. 이런 순수한 동경으로 커스텀 시계를 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해외직구 활성화로 엄청나게 저렴하게 시계 파츠들을 구할 수 있으니 현실적 차원에서 그야말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존경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오마주(homage)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린마스터-커스텀-제작-완성-모습
마린마스터-커스텀-완성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2. 준비물과 예산 산정

먼저, 필요한 부품과 도구를 준비해야겠지요.

5만 원 프로젝트인 만큼 품질과 동일성보다는 최저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습니다.

 

(1) 필요 부품

가. 무브먼트

최우선적으로 골라야 하는 파트는 역시 무브먼트입니다. 세이코 범용 무브먼트 중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가격이 저렴한 NH35A(일명 농협 35) 모델로 정했습니다. 뭐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욱이 다이버 커스텀 시계라면요. 자동/수동 와인딩 기능과 핵기능(시간 설정 시 초침 정지 기능), 날짜 디스플레이 기능이 있습니다. 가격은 27000원 내외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스펙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진동수 : 21600 VPH(Vibaration Per Hour), 시간당 21600번 진동한다는 의미로, 초당 6 진동(초침이 1초 동안 6회로 끊어서 움직입니다). 보통 28800 이상을 하이비트라고 칭하며(초당 8 진동), 진동수가 높을수록 초침 이동이 부드럽고 정확도가 높은 반면, 내구성은 줄어듭니다.  
  • 파워리저브 : 약 41시간
  • 보석 : 24석
  • 정밀도 : 일오차 -20 ~ +40초

나. 다이얼

마린마스터라고 하면 최초의 복각모델 sbdx001이 기준이 됩니다. 최근 sbdx023 등 신형이 출시되었지만 기본틀은 sbdx001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X 로고가 표시되었다는 점인데,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변화였지요. 저는 과거 모델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서, 구형 마마의 다이얼을 찾았습니다. 가격은 12000원 내외였습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다이얼을 무브먼트에 고정시키는 다이얼 다리가 6개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용두 위치가 3시와 4시(정확히는 3.8시) 방향 2가지 모두 사용하기 위해서인데, 마린마스터는 4시 방향에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다리를 잘라줘야 합니다. 니퍼를 사용해서 제거하면 되는데, 저는 손톱깎이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4개의 불필요한 다리를 잘라주면 3시에 날짜창, 4시에 용두 위치가 맞게 고정됩니다. 

다이얼-다리를-제거한-모습
다이얼-다리-제거

 

다. 시계 케이스

케이스 직경은 42mm, 다이얼 28.5mm용, 4시 방향에 용두가 설치되는 모델을 살펴봤는데, 너무나도 많은 제품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사이즈다 보니까 저가형부터 고급형까지 선택의 폭이 거의 무한대입니다. 저는 너무 싼 티만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최저가로 선택했습니다. 스트랩 너비 22mm가 다소 아쉽긴 했지만 베젤 인서트까지 포함 가격 22000원. 베젤 인서트는 물론 스틸입니다.

 

라. 핸즈 (시침, 분침, 초침)

NH35A용 핸즈를 검색하고 그중에서 마마용 핸즈 모양을 찾습니다. 가격대가 몇 백 원부터 몇 만 원 대까지 천차만별인데, 평이 좋고 구매가 많은 제품 중 최저가로 선정했습니다. 파손에 대비해서 2세트에 5000원.

 

 라. 시계줄

너비 22mm를 가진 스테인리스 스트랩 중 마마 느낌을 살리기 위해 비슷한 모양을 골랐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사실 프로스펙스 전용 스틸밴드가 존재했는데, 엉뚱한 제품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예산 상 시계줄에 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할 수 없었기에 최종 선택에는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거예요. 비용은 대략 7000원 정도입니다. 그리고 추가로 마마용 러버 스트랩도 구매했습니다. 이것도 대략 7000원. 

 

(2) 필요 도구

가. 핸즈 푸셔

시계 조립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핸즈 장착 부분이므로, 경험이 없다면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그냥 단단한 지우개를 잘라서 사용했습니다. 누르는 부위 가운데를 칼로 조금 파내면 시침, 분침, 초침들의 파손 없이 장착 가능합니다. 핸즈 푸셔를 검색해서 어떤 모양인지 파악하면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나. 케이스 오프너

이건 조립보다는 분해 시에 필요한 도구라고 해야겠네요. 케이백은 손으로 돌려서 잠가도 무리 없습니다. 다만 세게 조이기 힘들기 때문에 방수는 책임지지 못합니다.

 

다. 기본적인 도구들

시계줄 줄이는 도구나 분리하는 도구는 시계 파트들을 구매할 때, 저렴이들로 같이 보내줍니다. 핀셋이나 핸드폰 수리용의 작은 일자 드라이버는 있으면 작업하기 편해집니다. 익숙한 분이라면 집안에 있는 각종 도구들로 대체 가능하기는 합니다. 

구매한-시계-부품들-모습
시계-부품들

 

 

3. 시계 조립 과정과 유의사항

(1) 다이얼 다리 제거

다이얼 다리를 무브먼트에 맞게 잘려준 뒤, 무브먼트에 체결해 줍니다. 이 과정은 앞서 설명했기에 생략합니다.

 

(2) 핸즈 장착

다음은 핸즈 장착인데, 이 단계가 가장 고도로 어려운 과정입니다. 시계 조립의 성패는 여기에서 80%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단 용두를 2단계까지 최대한 잡아 빼서 시간을 정지한 후 작업합니다. 시침과 분침은 어찌 되든 결합이 되기는 하는데, 초침은 처음 경험할 경우 반드시 멘붕에 빠지게 됩니다.

 

무브먼트 중심에 바늘 같이 얇은 두께의 막대에 초침의 가운데 홀을 일치시키는 게, 요령 없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루페나 확대경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겠지만, 맨 눈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력이 필요합니다. 팁을 드리자면, 밝은 스탠드 아래에서 옆으로 보면서 결합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아서는 중심에 절대 맞출 수가 없어요. 수평으로 보면서 왼손의 핀셋으로 잡은 초침을 이동해서 오늘 손으로 누를 만한 도구로 중심에 적당한 무게를 가하면 고정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성공하면 감이 생깁니다. 혹시 시도하실 분이라면, 핸즈 푸셔를 같이 구매하시는 게 정신건강에 여러 모로 좋은 선택일 겁니다. 시간은 12시 00분 00초에 맞춰서 고정합니다.

 

(3) 용두 분리 : NH35

이후 단계에서는 용두를 분리합니다. 구매 시 처음 무브먼트에는 플라스틱 용두가 달린 스템(stem)이 장착되어 있는데, 무브먼트를 시계 케이스에 집어넣은 후 실제 용두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이 플라스틱 용두를 분리해야겠지요. 용두를 분리하려면 용두 분리 버튼을 누르고 용두를 빼야 합니다. 뒤집어서 아래 그림의 용두 분리 버튼을 핀셋으로 누르면 용두가 쉽게 빠집니다.

NH35-무브먼트의-용두-분리-버튼-위치
NH35-용두-분리-버튼

 

용두를 빼낼 때에는 시간이 다시 흐르게 밀어 넣은 상태여야 합니다. 이때 핸즈가 결합된 상태이기 때문에 파손되지 않게 가운데 부위가 움푹 파진, 뒤집어서 작업할 만 작업대가 필요한데, 무브먼트 케이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정리하면, 핸즈를 장착할 때에는 시간을 멈추고 용두를 빼낼 때에는 시간을 흐르게 합니다.

 

 

(4) 시계 케이스에 본체 삽입

용두를 분리했다면, 시계 케이스에 본체를 삽입할 수 있습니다. 좌우, 위아래 방향을 잘 조절해서 삽입하면 용두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5) 용두 스템 길이 조절

무브먼트에 동봉된 여분의 스템에 용두를 돌려서 결합합니다. 스템의 끝부분을 펜치나 니퍼로 잡고 돌리면 쉽게 체결됩니다. 이 용두를 시계에 삽입하면, 스템이 길어서 당연히 툭 튀어나옵니다. 스템을 다시 빼내서 용두를 분리한 후 니퍼로 적당한 길이를 잘라준 후 다시 용두 결합 후 길이를 맞춰봅니다.

 

이 과정이 좀 번거롭습니다. 잘라내는 부분은 용두를 돌려 끼우는 쪽입니다. 시계 내부로 들어가는 부위를 잘라내면 시간 조절이 되지 않으니 반드시 주의하셔야 합니다.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자르면서 스크루 부분까지 맞춰 줍니다. 

 

(6) 케이스백 닫기

여기까지 왔다면 사실상 시계 조립이 끝났습니다. 방수 고무링을 넣고 케이스백을 돌려서 닫아주면 완성입니다.  

 

 

 

에필로그

대략적인 총비용을 계산해 보겠습니다.

무브먼트 27000 + 다이얼 12000 + 시계 케이스 22000 + 핸즈세트 2개 5000 + 시계줄 2개 14000으로, 총 80000원입니다.

그렇다면 5만 원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버린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이 계산법에는 할인혜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알리에서는 출석체크 등 다양한 포인트 적립 수단이 존재합니다. 평소 해외직구를 종종 이용했던 터라, 충분한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기준 3000포인트 정도는 쉽게 적립할 수 있는데, 이 금액은 대략 4만 원이 넘어갑니다. 품목에 따라 최대 30~40% 정도 포인트 할인이 적용되기 때문에, 5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소요되었습니다. 시계줄을 하나 빼고 핸즈세트를 하나만 구매한다면 충분히 5만 원 미만이 가능함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세일기간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마린마스터-오이스터-밴드로-교체한-모습
마린마스터-오이스터-밴드

 

최저가격을 고수하다 보니, 아쉬운 점도 많이 남습니다. 특히 시계 케이스의 품질이나, 브레이슬릿의 가격대를 올렸다면 훨씬 그럴싸한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10만 원 정도라면 좋았겠지만, 커스텀은 적당한 선에서 즐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마린마스터-러버밴드로-교체한-모습
마린마스터-러버밴드

 

프로젝트 성공을 자축하면서 최종 2장의 사진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이스터 밴드와 러버밴드로 줄질한 모습입니다. 일오차 조정까지 해야 진정한 마무리겠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다음 포스팅으로 넘기도록 합니다. 감사합니다.